Monday, May 27, 2013

부자가 되려면...

나는 church goer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아무튼 기독교를 종교로 삼고있다. 하나 배우고 두개 까먹을지언정 성경공부도 한다.

나는 두군데 성경공부에 참석을 한다. 하나는 내가 속한 한국인교회에서 월 1회 갖는 구역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비지니스 관계로 만난 Christian businessmen 들끼리 매주 금요일 오전에 조찬을 겸해 갖는 모임이다. 첫번째 경우는 모이는 사람이 모두 한국사람들이고 두번째 경우는 다인종인데 반 이상은 백인이다.

지난 주 한국사람끼리 하는 성경공부가 있었다. 보통 다섯가정 정도 참석을 하는데 성경공부 후에는 오손도손 모여앉아 세상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P권사는 소규모 외식사업을 하고있는데 얼마전에 $100짜리 위조지폐를 실수로 받는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며 하소연 한다. 세탁소를 하는 K집사는 어떤 손님이 옷을 찾아가고 나서 몇일 후에 다시 와서 자기 옷 내놓으라고 생때를 쓰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또 다른 K집사는 양로원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는데 그 돈을 잃어버렸다며 아무리봐도 간호사가 훔쳐간 것 같다며 흥분을 한다. 참 순박하고 정이 많은 '보통' 사람들이다. 만약 내가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발벗고 나서서 도와줄 좋은분들이다.

반면에 외국친구들과 하는 성경공부는 10명 정도가 고정적으로 참석을 하는데 나를 포함해서 2~3명을 제외하면 수천만불~수억불의 재력가들이다. 14인승 자가용비행기를 가진 친구도 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를 들어 열심히 돈을 버는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거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벤처투자가, 변호사, 대기업중역 등등 직업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 중 일부는 오바마를 공산당보다 더 미워한다.

이 모임도 공부를 마치고 나면 아침식사를 하면서 교제시간을 갖는다. 한번은 금 값이 $1200쯤 할때인데 John이란 투자가가 금값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다며 운을 뛰운다. 몇 달 후 금값은 $1800까지 치솟았다. 언젠가는 HP사에서 조세업무를 담당하다가 지금은 부동산개발을 하고 있는 Phil이란 변호사가 Silicon Valley 남쪽에 2만가구가 들어서는 대형 주택건설프로젝트가 곧 허가가 떨어질 거라는 정보를 흘린다. 또 다른 Phil이란 친구는 기술은 좋지만 부실경영으로 파산한 회사의 특허를 헐값에 매입했다며 이런 특허를 필요로하는 한국회사가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한다. 모임의 리-더인 Ken (자가용비행기 주인)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유력한 사람중 하나인 테네시주 상원의원과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며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그 자리에 나오라고 초대를 한다. 나같은 보통사람한테는 그림의 떡인 정보가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모일때마다 이런 고급정보가 1~2개씩은 꼭 나온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친구로 가져라! 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구역모임 멤버들... 내가 이사를 가지 않는한 내 곁에 있으면서 기쁨과 슬픔을 나눌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그들 중에는 내가 부자가 되는데 도움이 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드라이크린을 할 때 조금 할인을 받는 정도가 전부다. 외국인 성경공부 친구들... 그들은 내 사업에 필요한 조언은 물론이고 미국 주류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다. 이 둘 모두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친구들이다. 이런 좋은 친구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것이 너무 감사하다.

Friday, May 24, 2013

칭찬의 위력!

주재원으로 실리콘벨리에 발을 디딘지 벌써 15년이 되간다. 초등학교 5학년, 1학년이던 아이들은 이제 성인이 됐다. 세월이 빠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주재원으로 부임한 동료가 여러 있다. 자녀들 나이도 비슷하고 한동네에 살아서 친하게 지냈다. 주재원 아이들은 미국에 처음 오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위한 ESL반에 배정이 된다. ESL반에서 어느 정도 영어가 되면 일반 학급으로 편입된다. 빠른 아이들은 불과 6개월만에 ESL 졸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2 넘에  ESL 졸업하지 못해 부모들의 속을 태우기도 한다. 자기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ESL 졸업하느냐를 가지고 부모들끼리 은근히 경쟁을 하기도 한다.

우리부부는 둘다 영어권에서 공부를 하여 다른 주재원 부부에 비해 영어를 하는편이었다. 사람들은 부모가 영어를 제법 하니 우리 아이들은 금새 ESL 졸업할걸로 예상했다. 우리 부부도 당연히 그렇게 될걸로 생각했다. 그런대 결과는 반대였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영어를 하면 그 말이 맞던 틀리던간에 부모들이 너무 신기하고 대견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신이나서 영어를 열심히 했다. 반면에 우리 집은 아이들이 집에와서 영어를 하면 "발음이 그게 뭐야!", "문법이 틀렸잖아" 하며 부모들한테 야단을 맞기 일수였다. 아이들은 영어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집에와서는 아에 영어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당연히 영어가 안늘었다. 18개월만에 겨우 ESL 졸업했다.

가야금명인 황병기. 그는 원래부터 국악 전공자가 아니었다. 그는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법대를 나온 수재다.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반에서 꼴지를 도맡아 하는 문제아였다. 그의 부모가 가정교사를 여러 붙여봤지만 아무 차도가 없었다. 하루는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그의 사촌형이 황병기씨 집에 하숙을 하며 황병기씨의 가정교사를 자청했다. 그는 황병기씨가 공책에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갈겨쓴 글씨를 보고 한심하다고 야단을 치는 대신에 " 글씨를 초등학생 답게 쓰는구나!" 라고 칭찬을 해줬다. 머리 털나고 칭찬이라곤 처음 들어본 황병기씨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사촌형을 따르기 시작했고 형이 시키는대로 공부를 했다. 차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인 경기중학교에 합격하고 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까지 졸업한다.

우리는 칭찬에 극히 인색한 민족이다. 금년 장관후보 청문회만 봐도 어느 장관이 어떤 흠집이있는지는 빠삭하게 알게됐지만 누가 어떤 특기가 있는지, 장점이 뭔지, 과거에 어떤 공로가 있었는지는 전혀 들은바가 없어 모르겠다. 기억에 우리나라 장관이 유일하게 국민과 언론에 칭찬 받은 것은 김장수국방장관이 김정일과 악수를 하며 허리를 굽히지 않았을때인 같다.


감시와 채찍질도 중요하지만, 능력이 있고 뭔가 잘한게 있어서 장관자리까지 올라온 사람들이니 믿고, 격려하고 잘 한 것은 잘 했다고 칭찬해주며 일의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요즘 장관들은 마치 야단맞기 싫어서 영어쓰기를 거부했던 우리 아이들처럼 실수를 할까봐 두려워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원세훈전국정원장 대선개입 수사, 4대강 비리 수사, CJ 비자금 수사 등등 검찰은 엄첨 바쁘게 움직이는데 그 외에 다른 부처 장관들은 요즘의 어젠다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

Friday, May 03, 2013

Cost of mistrust!

최근 신문에서 SAT, LSAT, 토익 등 각종 시험에서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얼마전에는 미국 일류대학에서 한국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나 추천서는 아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얘기가 돈적이 있는데 이제는 한국학생들의 공인시험성적까지도 도마에 오를 형편이다. 선진국의 문턱을 넘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나라의 발목을 잡는 일들이다.

내 아내는 변호사다. 비밀유지는 변호사의 생명이다. 하지만 너무나 황당한 사건은 아내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가끔씩 들려준다.

얼마전 아내가 이런 케이스를 맡은적이 있다. 가정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다. A라고 해두자. A는 최근에 미국시민권을 신청했는데 시민권 자격심사 과정에서 자기가 오래 전에 결혼을 한 적이 있다는걸 알게된다. 어떻게 된건가 알아보니 A는 오래전에 영주권브로커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했는데 그 브로커가 위장결혼을 통해 영주권을 받다준 것이다. 이런 경우 영주권취득 1~2년 후에 이혼절차를 밟아 신분세탁을 하는게 보통인데 브로커가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거나 아니면 A가 깜빡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 후에 A는 현재의 부인과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처벌강도가 어떤지는 잘 모르나 미국에서 중혼(重婚)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A는 졸지에 중혼죄로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A가 중혼죄 처벌을 면하려면 혼인무효소송을 통해 과거에 붙은 '딱지'를 떼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A는 영주권사기범이되어 미국서 추방을 당하게된다. 참 딱한 처지다. (그 사건의 결론이 궁금한데 아내가 얘기를 안해줘서 모른다) A같은 사람이 종종 있다보니 정직하게 영주권을 신청하는 사람들조차 불필요하게
까다로운 서류심사를 받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니 신정아사건이 떠올랐다. 신정아는 브로커를 통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인정했지만 자기는 그 학위가 실제 예일대학 학위인 줄 알았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고 박박우겼다. 즉, 과정은 잘 못 됐지만 자신이 동국대 교수 임용때 제출한 예일대학 박사학위는 진짜 학위로 생각하고 제출 했기때문에 자신은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뻔뻔함까지 보여줬다. 이 소문은 예일대학에 쫙 퍼졌을 것이다. 이제 예일대학에서는 한국의 서류위조행위가 얼마나 심한지 다 알게됐다. 앞으로 한국학생이 제출하는 서류를 색안경을 끼고 볼 것은 뻔한 사실이다.

불법, 위법, 편법, 탈법... 문제의식이 점점 실종되고 있다. 나 자신만 해도 떳떳지 못한 기억이 수없이 많다. "Cost of mistrust" 즉 불신비용은 전세계적인 문제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심한것 같다. 미국 정부, 대학, 보험회사, 은행 등에서 한국사람들이 제출하는 서류의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의 얌체행위로 발생하는 불신비용은 결국 우리모두가 갚아야 할 빚이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Tuesday, April 16, 2013

DRAM 성공신화의 교훈

삼성이 메모리반도체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시작한지 불과 10여년만에 세계 일등이 됐다. 반면에 프로세서 분야에서는 그동안 투자한 것에 비하면 성과가 미미하다. 그 이유에 대해 동료들과 토론을 해본적이 있다.

삼성반도체의 일등공신 이윤우부회장. 그는 실력 만큼이나 고집도 쌨다. 반도체를 공부하기위해 전자과를 택했고,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할거라는 소문을 듣고 삼성에 들어왔다. 그러나 삼성이 특유의 돌다리 두드려보기식으로 사업착수를 미적거리자 회사를 떠난다. 상사들이 몇 주 동안 그의 집으로 찾아와 반도체사업을 꼭 할거라고 약속을 하자 회사로 복귀한다. 그는 그 정도 고집장이였다. 반도체사업 착수 후에는 그 고집과 열정을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데 쏟아부었다.

타이밍도 좋았다.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진출을 결심할 즈음에 인텔 등 미국 반도체회사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DRAM사업을 접고 시스템LSI 로 올인을 했다. DRAM쪽에서 일하던 많은 교포 기술자들이 갑자기 일자리를 잃었고 삼성에서 그들을 싺쓸이해갔다. 어떤 사업이던 인재가 가장 중요한데 삼성은 순식간에 수 많은 인재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윤우부회장의 리더쉽 아래 똘똘 뭉쳤다.

리더도 중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DRAM 사업은 우리나라 사람들 체질에 꼭 맞는 사업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표만 정해지면 그 목표지점에 도달하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등이다. 그런면에서 DRAM은 목표설정이 너무 쉽다. 4메가를 달성하는 순간 16메가라는 목표가 정해진다. 그 다음은 64메가, 256메가, 1기가 식이다. 곱하기 4만 하면 된다. 일단 모두가 공감하는 목표가 정해지면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돌진한다. DRAM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에 시스템LSI는 목표설정이 쉽지않다. Clock Speed 1.2Ghz 짜리 프로세서 개발에 성공했다고 치자. 그 다음은? 1.5Ghz, 1.7Ghz 아니면 2Ghz를 할지 우왕좌왕 한다. 우리 체질에 잘 않맞는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과거에 시스템LSI가 항상 헤맸던 이유다.

이명박정부의 핵심사업인 녹색성장과 4대강... 공감대형성이 부족했다. 국민의 힘을 결집할 수 없었다. 결국 실패했다. 박근혜정부의 키워드중 하나인 '창조경제'. 청와대 비서관이나 장관도 그게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 햇갈려한다. '창조경제'가 뭔지도 모르는 판국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리가 없다. 공감대가 전혀 없다. 윤진숙같이 여당도 야당도 일반국민도 모두가 다 아니라는 사람의 장관임명을 고집하는 집권스타일로 어떻게 국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들의 힘을 결집할지 걱정이다.

Thursday, April 04, 2013

맥아더장군의 통역관...

요즘 영어번역서를 3권을 동시에 읽고 있다. 한권은 시작한지 몇 달 됐고 2권은 최근에 시작했다. 바쁘기도 하고 책 읽는 속도가 느려서 언제 끝날지 기약은 없다.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좀 어색한 부분이 나타나면 "나 같았으면 이렇게 번역을 했을텐데!" 하며 혼자서 중얼거려 본다. 특히 스토리전개를 고려하지 않은 직역이 많은 책, 그리고 제목이 제대로 번역이 안 된 책은 왠지 번역가가 좀 게으르거나 서툴다는 생각이 들어 읽기 싫어진다.

"Good to Great" 라는 경영서적이 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경영자들 사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책이다. 한국에서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됐다. 왠지 제목이 좀 길고 촌스럽다. 만약 나보고 번역을 하라면 "일류에서 초일류로" 라고 번역을 했을것 같다.

"Sparks of Genius" 는 "생각의 탄생" 이란 책으로 번역이 되어 국내에서 많은 인기를 끌었다. 나는 솔직히 이보다도 번역을 더 멋지게 할 자신이 없다. 아주 간결하고 책의 내용과도 잘 부합하는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Outliers" 나 "Inside Apple" 등은 구지 번역을 하지 않고 "아웃라이어", "인사이드 애플" 등으로 그대로 놔둠으로서 내용 전달이 더 잘되는 것 같다.

번역/통역에 대한 일화가 많다. 그 중 하나는 맥어더장군 관련된 일화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 후에 맥아더장군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가 가는곳 마다 수많은 인파가 그를 구경하기 위해 모였고 그의 연설을 듣기를 원했다. 맥아더는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이 그렇듯이 서두에 농담을 몇 마디 던지고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통역사들이 맥아더의 농담을 제대로 한국말로 옮기지 못하다보니 맥아더가 펀치라인을 날렸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웃는사람이 없어서 맥아더가 맥이 빠지곤 했다.

그래도 맥아더는 어디를 가나 미국에서 하는 식으로 연설 서두에 농담을 몇 마디씩 했다. 최소한 그 자리에 있는 극소수 미국 사람들이라도 웃기고자 했다. 하루는 맥아더가 농담을 하는데 통역사가 직역을 하는 대신 이렇게 통역을 했다. "여러분, 지금 맥아더장군이 여러분을 웃기려고 하니까 내가 웃으라고 하면 웃으세요". 맥아더가 몇 마디를 더 했다. 통역사가 "여러분 아직 아닙니다" 라고 했다. 맥아더가 말을 끊을때마다 통역사는 "아직 아니에요!" 라고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드디어 맥아더가 펀치라인을 날렸다. "여러분 이제 웃으세요!" 관중들이 강당이 떠나갈정도로 크게 웃었다.

연설을 마친 후 맥아더가 그 통역사를 불렀다. 맥아더는 통역사에게 "당신은 내가 여지껏 본 통역사 중 가장 훌륭한 통역사다" 라고 칭찬을 하며 자기의 전속 통역사가 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Tuesday, March 26, 2013

비밀에 숨겨진 비밀!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80년대에 공상과학영화를 한 편 본적이 있다. 우주인이 달에 착륙을 했다. 우주인은 관제센터의 실수로 목표지점이 아닌 다른 곳에 착륙을 한다. 그가 착륙한 곳은 미국정부가 핵전쟁시 주요인사들의 피신처로 세워놓은 도시였다. 그 도시의 존재 여부는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국가기밀이었다.

우주인이 지구로 돌아왔을때 최초로 그를 맞이한 사람은 CIA 요원이었다. CIA 요원은 우주인에게 달에서 본 것을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되며, 만약 비밀을 누설하면 가족들까지도 제거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주인은 비밀을 지켜야한다는 압박감때문에 나중에는 정신병자가 되고 끝내 자살을 하고 만다. 비밀을 지킨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표현한 영화였다.

미국에는 이런 농담도 있다. 교인들이 일요일 골프를 치러가느라 교회에 빈자리가 늘어나자 하루는 목사가 일요일 교회를 빼먹고 골프를 치러가는건 죄악이라고 설교를 했다. 그런데 목사 자신도 골프광이었다. 하루는 몸이 아프다고 부목사한테 설교를 맡기고 혼자서 몰래 골프를 치러갔다. 그날 목사는 난생 처음으로 홀인원을 한다. 하나님한테 벌을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홀인원이라니! 너무 기뻤다. 기쁨은 잠시였다. 목사는 곧 홀인원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것을 알게된다. 홀인원 사실을 교인들한테 자랑을 하고 싶지만 일요일 골프친 사실이 들통날까봐 아무한테도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목사한테 이보다 큰 고통은 없었다.

이처럼 비밀을 지킨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을때 애플의 신제품은 발표 당일까지 베일에 가려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등에서 소개를 할 때야 비로서 대중에 알려지곤 했다. 한 잡지 기자는 아이폰 발표를 보고나서 "아이폰보다 더 놀라운것은 그러한 혁신제품이 오늘까지 공개가 안되고 비밀이 지켜지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런면에서 애플의 차기 제품인 iwatch 는 벌써부터 여러가지 형태로 비밀이 세어나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 사망후에 애플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CIA 요원들이나 KGB 요원들도 종종 고의로 또는 실수로 비밀누설을 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 생존시 애플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잡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Sunday, March 17, 2013

S대생이 되기를 마다하고 고등학생이 된 괴짜!

얼마전 Y라는 고교시절 친구한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다른 친구를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됐단다. 고등학교때 마지막으로 보고 30여년만이다. 그는 고 1때 우리반 반장이었다. 나는 고2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Y는 자퇴를 하는 바람에 같이 학교를 다닌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나와는 통하는데가 있었기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친구다.

Y는 정말 괴짜다!

Y는 친구이기 전에 나의 중학교 2년 선배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Y는 같은 학교 졸업반이었다. Y는 유명했다. 체격도 좋았고, 공부는 항상 전교 1등이었다. 전교생이 참석하는 조회시간에 단상에 불려나와 상도 여러번 받았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그를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Y는 입학시험을 몇 달 앞두고 큰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매일 같이 교무실로 경찰서로 불려다니느라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본인이 가고자했던 고등학교에 낙방했다.

이듬해 부터는 고교 평준화가 실시됐다. Y는 추첨으로 고등학교를 가느니 차라리 검정고시를 택했다. 머리가 좋았던 그는 1년만에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종로에 있는 입시학원에 등록 했다. 그것도 서울대반에 배정이 됐다. Y는 수학을 특히 좋아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서울법대에 가야한다고 Y를 몰아부쳤다. Y는 자신의 적성을 무시하고 아들을 법관으로 만들겠다는 집착때문에 몰아부치는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졌다. 둘은 자주 부딪혔다. Y는 그런 어머니한테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대학교 대신 고등학교로 빽도를 했다. 어머니한테는 "나같은 불효자는 학문보다 인성공부가 더 중요합니다" 라고 이유를 댔다. 전교 1등을 도맡아하던 중학교 2년 선배가 나와 친구가 된 배경이다.

이미 대입자격까지 따놨고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친구가 고1로 돌아왔으니 Y는 공부할게 별로 없었다. 친구들이 단어장을 들고다니며 단어를 외울때 Y는 원어로된 소설책을 읽고다녔다. 왠만한 과목은 선생님들 보다 Y의 실력이 좋았다. Y는 종종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 할 예리한 질문을 던져 실력이 없는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부 선생님들한테 Y는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Y를 손을 보기 시작했다. Y는 툭하면 학우들 앞에서 선생님들한테 얻어맞곤 했다. 욱하는 성격이 있는 Y는 하루는 교무실을 난장판으로 뒤집어놓고 자퇴를 한다. Bill Gates나 Steve Jobs 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Y와 비슷한 꼴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거꾸로 Y도 미국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다녔다면...

3월 말 한국출장길에 Y를 만나기로 했다. 정말 재미있고 엉뚱한 친군데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것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가 어떤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들어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한국에 가있다!

Friday, March 15, 2013

본능

Canadian Goose라는 거위가 있다. 원래는 캐나다에 서식하다가 멕시코/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여름이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철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새들이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일년 열두달 남쪽에 머무는 텃새가 됐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도시가 들어서면서 자연이 훼손되고, 자연을 지도삼아 캐나다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길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만약 그 추측이 맞다면 환경변화가 동물의 본능까지 바꾼다는 말이 되겠다.


요즘은 거위들의 짝짓기철이다. 공원에 가면 평소처럼 수십~수백마리씩 모여있는 거위때는 볼 수가 없고 그대신 여기 저기 두마리씩 짝을지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은 아직 짝을 찾지 못 한 숫놈이 고성을 지르면서 짝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드물기는 하지만 암컷 한마리를 놓고 숫컷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는 "쓰리섬"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본능은 상실했지만 짝짓기 본능만은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받아드리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간의 본능 관점에서 비교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남자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뺐기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자가 TV에서 멋진 배우를 보고 아무리 감탄을 해도 남자는 피식 웃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여자가 다른 남자를 상대할 경우 자기의 2세를 번식할 확율이 줄어든다는 본능 때문이다. 여자는 반대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는건 부부싸움 한번 하고 넘어갈지 몰라도 마음을 뺐기는 것은 허락하지 못한다. 남자가 사냥이나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해오지 않으면 자기 새끼들이 생존할 수 없다는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맞지 않는 얘기다.

환경의 변화가 철새를 텃새로 만드는 것 처럼 사회의 변화도 인간의 본능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피임도구의 발달로 섹스=임신 이라는 공식이 깨졌고 돈만 있으면 남자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세상이 된 만큼 여자가 남자에 존속하고 의존하는 본능이 퇴화하고 진정으로 남녀평등한 사회가 곧 올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Thursday, March 07, 2013

"마약 먹여 결혼했나?"



어떤 판사가 재판 중 대졸 여성을 아내로 맞은 초등학교 학력의 남자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판사가 막말을 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출신배경과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사회의 편견이다.

출신배경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사람이 있다. 신호범 워싱톤 상원의원. 한국인 치고는 미국정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하나다.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의원이 있지만 그는 LA 근교 한인밀집지역에서 당선됐다. 신의원 주민 대부분이 백인인 워싱톤주에서 당선되었기에 더욱 화제다.

신의원은 고아 아닌 고아다. 어릴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신의원을 외삼촌집에 맡겨두고 돈을 벌러 큰 도시로 떠났다. 외삼촌집에 얹혀살던 신의원은 외숙모의 학대를 못이겨 가출을 했고 서울역 부근에서 구걸을 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방이되고 미군들이 들어왔다. 미군들은 고아들을 부대로 데려가 소위 하우스보이”를 시켰다. 신의원도 그 중 하나였다. 신의원을 귀엽게 군의관이 본국으로 귀임하면서 신의원을 양자로 입양했다. 당시 신의원 나이는 17세였다.

신의원은 미군부대에서 배운 영어실력으로 어느정도 의사소통은 됐지만 정식 학교수업이라고는 한번도 받은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갔더니 고등학교에서는 기초가 없어서 받아줄 없다고 하고, 초등학교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받아줄 없다고 했다. 신의원은 양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초인간적으로 공부한 결과 불과 18개월만에 --고교 과정을 끝내고 GED (대입검점고시) 까지 합격한다. 이후 유타주의 Brigham Young 대학을 거쳐 워싱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60년대 하와이대학 교수가 된다.

당시 하와이대학은 한국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신의원은 우상같은 존재였다. 자기들은 영어도 못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느라 쩔쩔매고 있는데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인 신의원은 영어도 유창했고 하늘같은 교수님 신분이었다. 유학생들은 분명히 신의원이 고관대작 또는 갑부의 아들일거라고 추측을 했다. 당시 미국유학을 간다는건 보통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할때인데 신의원은 자신들보다도 훨씬 먼저 미국에 왔기 때문이다. 유학생이 신의원에게 부친이 뭘 하는 사람인가 물었다. 신의원이 자신의 과거를 들려줬다. 그러자 유학생이 이제보니 형편 없는놈 아니야!” 하며 멸시하더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의원이 거지였다는 소문이 대학내 한인 커뮤니티에 퍼졌고 신의원은 졸지에 왕따신세가 됐단다. 신의원은 자서전에서 미국에 온 이후 백인들한테 받은 어떠한 설움보다 심한 설움을 동포한테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신의원이 남들이 12년동안 하는 공부를 불과 18개월만에 독학으로 통달한 천재라는 사실과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도 출신배경 앞에서는 모두 하찮은 것 들이었다.

그러고보니 노무현대통령도 변호사나 국회의원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서까지도 고졸이라는 학력때문에 종종 소모적인 신경전에 휘말렸던 것 같다.

이렇게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솔직히 내 아이들이 뭘 전공할건지 보다는 어느 대학에 갈건지에 더 관심을 가졌었다. 깊이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