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은 청와대 문턱에 두번이나 올라갔다가 결국 주져앉았다. 98년도에는 이인재가 탈당해서 신당을 창당하는 바람에, 03년도에는 정몽준이 노무현과 연합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사기꾼 김대업이 일으킨 병풍사건도 한 몫을 했다. 어찌보면 이회창은 대통령이 될 팔자가 아니었다.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팔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 알 고어다.
고어는 92년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사람들한테 신뢰를 주는 인상과 모범적인 가정생활, 게다가 상원의원을 지낸 부친의 후광까지 받아 일찌감치 대통령감으로 지목됐다. 반면에 클린톤은 미국정치의 변방인 Arkansas주지사 경력이 전부였다. 어릴때 부모가 이혼을 하고 어머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알콜중독자 양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등 배경도 초라했다. 아무도 클린톤이 고어를 제치고 민주당후보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경선기간 중 고어의 아들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뺑소니 사고였다. 아들은 사경을 해매는 지경까지 갔다. 고어의 부인이 남편 선거운동과 아들 병간호를 병행하다가 심한 우울증에 걸렸다. 백악관의 꿈과 가족을 놓고 고민하던 고어는 결국 가족을 택했다. 경선을 포기했다. 고어의 들러리 신세였던 클린톤이 졸지에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됐다.
클린톤이 대선에서 맞붙게될 공화당 후보는 현직대통령인 아버지부시였다. 아버지부시는 택사스주 석유재벌이자 상원의원인 부친밑에서 정치수업을 받았고, 포드대통령때 CIA 국장,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인 레이간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 등등 화려한 배경과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Arkansas시골 주지사 경력이 전부인 클린톤한테는 골리앗과 같은 상대였다.
클린톤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러닝메이트를 내세우는 것이었다. 고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미국 부통령은 야망있는 정치인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다. 특히 젊고 패기넘치는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하게되면 대통령의 그림자에 가려 자신의 정치생명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고어가 부통령직을 수락할리가 없었다.
클린톤은 고어를 러닝메이트로 끌어들이기 위해 大타협을 한다. “인포메이션 수퍼하이웨이” 와 “글로발워밍”대책은 고어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기로 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지원을 약속한다. 미국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부통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실 고어가 부통령을 역임한 1992~2000년이 인터넷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는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고어는 아직까지도 환경문제에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입김이 센 사람이다.
어찌 보면 한 나라의 지도자는 하늘에서 정해주는 것 같다. 김대중이 4수만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시점은 우리나라가 IMF 위기로 정말 어려울때였다. 김대중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다. "한때는 너무 힘이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한적도 있었는데 이제보니 하나님은 우리나라가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나라를 구하는 임무를 나에게 맡기려고 그동안 나를 대통령을 안시키고 고난을 주신것 같다!"라고...
비록 박근혜를 찍지 않은 사람들도 하늘이 뜻이 있어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고 모두가 잘 살도록 힘을 합치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