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6, 2013

비밀에 숨겨진 비밀!

제목은 기억이 안나는데 80년대에 공상과학영화를 한 편 본적이 있다. 우주인이 달에 착륙을 했다. 우주인은 관제센터의 실수로 목표지점이 아닌 다른 곳에 착륙을 한다. 그가 착륙한 곳은 미국정부가 핵전쟁시 주요인사들의 피신처로 세워놓은 도시였다. 그 도시의 존재 여부는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국가기밀이었다.

우주인이 지구로 돌아왔을때 최초로 그를 맞이한 사람은 CIA 요원이었다. CIA 요원은 우주인에게 달에서 본 것을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되며, 만약 비밀을 누설하면 가족들까지도 제거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주인은 비밀을 지켜야한다는 압박감때문에 나중에는 정신병자가 되고 끝내 자살을 하고 만다. 비밀을 지킨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표현한 영화였다.

미국에는 이런 농담도 있다. 교인들이 일요일 골프를 치러가느라 교회에 빈자리가 늘어나자 하루는 목사가 일요일 교회를 빼먹고 골프를 치러가는건 죄악이라고 설교를 했다. 그런데 목사 자신도 골프광이었다. 하루는 몸이 아프다고 부목사한테 설교를 맡기고 혼자서 몰래 골프를 치러갔다. 그날 목사는 난생 처음으로 홀인원을 한다. 하나님한테 벌을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홀인원이라니! 너무 기뻤다. 기쁨은 잠시였다. 목사는 곧 홀인원이 하나님의 저주라는 것을 알게된다. 홀인원 사실을 교인들한테 자랑을 하고 싶지만 일요일 골프친 사실이 들통날까봐 아무한테도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목사한테 이보다 큰 고통은 없었다.

이처럼 비밀을 지킨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을때 애플의 신제품은 발표 당일까지 베일에 가려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등에서 소개를 할 때야 비로서 대중에 알려지곤 했다. 한 잡지 기자는 아이폰 발표를 보고나서 "아이폰보다 더 놀라운것은 그러한 혁신제품이 오늘까지 공개가 안되고 비밀이 지켜지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런면에서 애플의 차기 제품인 iwatch 는 벌써부터 여러가지 형태로 비밀이 세어나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 사망후에 애플의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CIA 요원들이나 KGB 요원들도 종종 고의로 또는 실수로 비밀누설을 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 생존시 애플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잡스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Sunday, March 17, 2013

S대생이 되기를 마다하고 고등학생이 된 괴짜!

얼마전 Y라는 고교시절 친구한테 카톡으로 연락이 왔다. 다른 친구를 통해 내 연락처를 알게 됐단다. 고등학교때 마지막으로 보고 30여년만이다. 그는 고 1때 우리반 반장이었다. 나는 고2때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Y는 자퇴를 하는 바람에 같이 학교를 다닌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나와는 통하는데가 있었기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친구다.

Y는 정말 괴짜다!

Y는 친구이기 전에 나의 중학교 2년 선배다. 내가 중학교 1학년때 Y는 같은 학교 졸업반이었다. Y는 유명했다. 체격도 좋았고, 공부는 항상 전교 1등이었다. 전교생이 참석하는 조회시간에 단상에 불려나와 상도 여러번 받았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그를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Y는 입학시험을 몇 달 앞두고 큰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매일 같이 교무실로 경찰서로 불려다니느라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본인이 가고자했던 고등학교에 낙방했다.

이듬해 부터는 고교 평준화가 실시됐다. Y는 추첨으로 고등학교를 가느니 차라리 검정고시를 택했다. 머리가 좋았던 그는 1년만에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종로에 있는 입시학원에 등록 했다. 그것도 서울대반에 배정이 됐다. Y는 수학을 특히 좋아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서울법대에 가야한다고 Y를 몰아부쳤다. Y는 자신의 적성을 무시하고 아들을 법관으로 만들겠다는 집착때문에 몰아부치는 어머니와 사이가 나빠졌다. 둘은 자주 부딪혔다. Y는 그런 어머니한테 복수한다는 마음으로 대학교 대신 고등학교로 빽도를 했다. 어머니한테는 "나같은 불효자는 학문보다 인성공부가 더 중요합니다" 라고 이유를 댔다. 전교 1등을 도맡아하던 중학교 2년 선배가 나와 친구가 된 배경이다.

이미 대입자격까지 따놨고 서울대를 목표로 공부하던 친구가 고1로 돌아왔으니 Y는 공부할게 별로 없었다. 친구들이 단어장을 들고다니며 단어를 외울때 Y는 원어로된 소설책을 읽고다녔다. 왠만한 과목은 선생님들 보다 Y의 실력이 좋았다. Y는 종종 우리는 알아듣지도 못 할 예리한 질문을 던져 실력이 없는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일부 선생님들한테 Y는 눈의 가시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Y를 손을 보기 시작했다. Y는 툭하면 학우들 앞에서 선생님들한테 얻어맞곤 했다. 욱하는 성격이 있는 Y는 하루는 교무실을 난장판으로 뒤집어놓고 자퇴를 한다. Bill Gates나 Steve Jobs 도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Y와 비슷한 꼴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거꾸로 Y도 미국에서 태어나서 학교를 다녔다면...

3월 말 한국출장길에 Y를 만나기로 했다. 정말 재미있고 엉뚱한 친군데 그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을 것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가 어떤 발자취를 걸어왔는지 들어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한국에 가있다!

Friday, March 15, 2013

본능

Canadian Goose라는 거위가 있다. 원래는 캐나다에 서식하다가 멕시코/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여름이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철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새들이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일년 열두달 남쪽에 머무는 텃새가 됐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도시가 들어서면서 자연이 훼손되고, 자연을 지도삼아 캐나다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길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만약 그 추측이 맞다면 환경변화가 동물의 본능까지 바꾼다는 말이 되겠다.


요즘은 거위들의 짝짓기철이다. 공원에 가면 평소처럼 수십~수백마리씩 모여있는 거위때는 볼 수가 없고 그대신 여기 저기 두마리씩 짝을지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은 아직 짝을 찾지 못 한 숫놈이 고성을 지르면서 짝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드물기는 하지만 암컷 한마리를 놓고 숫컷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는 "쓰리섬"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본능은 상실했지만 짝짓기 본능만은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받아드리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간의 본능 관점에서 비교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남자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뺐기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자가 TV에서 멋진 배우를 보고 아무리 감탄을 해도 남자는 피식 웃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여자가 다른 남자를 상대할 경우 자기의 2세를 번식할 확율이 줄어든다는 본능 때문이다. 여자는 반대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는건 부부싸움 한번 하고 넘어갈지 몰라도 마음을 뺐기는 것은 허락하지 못한다. 남자가 사냥이나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해오지 않으면 자기 새끼들이 생존할 수 없다는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맞지 않는 얘기다.

환경의 변화가 철새를 텃새로 만드는 것 처럼 사회의 변화도 인간의 본능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피임도구의 발달로 섹스=임신 이라는 공식이 깨졌고 돈만 있으면 남자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세상이 된 만큼 여자가 남자에 존속하고 의존하는 본능이 퇴화하고 진정으로 남녀평등한 사회가 곧 올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Thursday, March 07, 2013

"마약 먹여 결혼했나?"



어떤 판사가 재판 중 대졸 여성을 아내로 맞은 초등학교 학력의 남자한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판사가 막말을 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출신배경과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사회의 편견이다.

출신배경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사람이 있다. 신호범 워싱톤 상원의원. 한국인 치고는 미국정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 하나다.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김창준의원이 있지만 그는 LA 근교 한인밀집지역에서 당선됐다. 신의원 주민 대부분이 백인인 워싱톤주에서 당선되었기에 더욱 화제다.

신의원은 고아 아닌 고아다. 어릴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신의원을 외삼촌집에 맡겨두고 돈을 벌러 큰 도시로 떠났다. 외삼촌집에 얹혀살던 신의원은 외숙모의 학대를 못이겨 가출을 했고 서울역 부근에서 구걸을 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방이되고 미군들이 들어왔다. 미군들은 고아들을 부대로 데려가 소위 하우스보이”를 시켰다. 신의원도 그 중 하나였다. 신의원을 귀엽게 군의관이 본국으로 귀임하면서 신의원을 양자로 입양했다. 당시 신의원 나이는 17세였다.

신의원은 미군부대에서 배운 영어실력으로 어느정도 의사소통은 됐지만 정식 학교수업이라고는 한번도 받은적이 없었다. 미국에서 학교에 등록을 하러 갔더니 고등학교에서는 기초가 없어서 받아줄 없다고 하고, 초등학교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받아줄 없다고 했다. 신의원은 양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초인간적으로 공부한 결과 불과 18개월만에 --고교 과정을 끝내고 GED (대입검점고시) 까지 합격한다. 이후 유타주의 Brigham Young 대학을 거쳐 워싱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60년대 하와이대학 교수가 된다.

당시 하와이대학은 한국 유학생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신의원은 우상같은 존재였다. 자기들은 영어도 못하면서 수업을 따라가느라 쩔쩔매고 있는데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인 신의원은 영어도 유창했고 하늘같은 교수님 신분이었다. 유학생들은 분명히 신의원이 고관대작 또는 갑부의 아들일거라고 추측을 했다. 당시 미국유학을 간다는건 보통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할때인데 신의원은 자신들보다도 훨씬 먼저 미국에 왔기 때문이다. 유학생이 신의원에게 부친이 뭘 하는 사람인가 물었다. 신의원이 자신의 과거를 들려줬다. 그러자 유학생이 이제보니 형편 없는놈 아니야!” 하며 멸시하더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의원이 거지였다는 소문이 대학내 한인 커뮤니티에 퍼졌고 신의원은 졸지에 왕따신세가 됐단다. 신의원은 자서전에서 미국에 온 이후 백인들한테 받은 어떠한 설움보다 심한 설움을 동포한테 받았다라고 회고했다. 신의원이 남들이 12년동안 하는 공부를 불과 18개월만에 독학으로 통달한 천재라는 사실과 대학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도 출신배경 앞에서는 모두 하찮은 것 들이었다.

그러고보니 노무현대통령도 변호사나 국회의원시절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되서까지도 고졸이라는 학력때문에 종종 소모적인 신경전에 휘말렸던 것 같다.

이렇게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솔직히 내 아이들이 뭘 전공할건지 보다는 어느 대학에 갈건지에 더 관심을 가졌었다. 깊이 반성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