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5, 2013

본능

Canadian Goose라는 거위가 있다. 원래는 캐나다에 서식하다가 멕시코/캘리포니아에서 겨울을 보낸 후 여름이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는 철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새들이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일년 열두달 남쪽에 머무는 텃새가 됐다. 미국 서부 해안을 따라 도시가 들어서면서 자연이 훼손되고, 자연을 지도삼아 캐나다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길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만약 그 추측이 맞다면 환경변화가 동물의 본능까지 바꾼다는 말이 되겠다.


요즘은 거위들의 짝짓기철이다. 공원에 가면 평소처럼 수십~수백마리씩 모여있는 거위때는 볼 수가 없고 그대신 여기 저기 두마리씩 짝을지어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은 아직 짝을 찾지 못 한 숫놈이 고성을 지르면서 짝을 찾아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드물기는 하지만 암컷 한마리를 놓고 숫컷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도 보이고 심지어는 "쓰리섬"을 연상시키는 기이한 장면도 볼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본능은 상실했지만 짝짓기 본능만은 쉽게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받아드리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간의 본능 관점에서 비교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남자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뺐기는 것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여자가 TV에서 멋진 배우를 보고 아무리 감탄을 해도 남자는 피식 웃고 지나간다. 그렇지만 여자가 다른 남자와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것은 용서하지 못한다. 여자가 다른 남자를 상대할 경우 자기의 2세를 번식할 확율이 줄어든다는 본능 때문이다. 여자는 반대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는건 부부싸움 한번 하고 넘어갈지 몰라도 마음을 뺐기는 것은 허락하지 못한다. 남자가 사냥이나 농사를 지어 먹을 것을 구해오지 않으면 자기 새끼들이 생존할 수 없다는 본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는 너무나 맞지 않는 얘기다.

환경의 변화가 철새를 텃새로 만드는 것 처럼 사회의 변화도 인간의 본능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피임도구의 발달로 섹스=임신 이라는 공식이 깨졌고 돈만 있으면 남자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세상이 된 만큼 여자가 남자에 존속하고 의존하는 본능이 퇴화하고 진정으로 남녀평등한 사회가 곧 올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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